한국의 역사공부

한국 위인 신라 거문고 장인 백결선생 누구인가

불고 또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바닐라 삼촌 2022. 9. 28.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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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장인 백결선생 알아보자

거문고 장인 백결선생 경주 낭산 기슭에 살았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이름도 성도 알 수 없으며, 가세가 빈곤하여 늘 누더기 옷을 입고 다녔고, 사람들은 그를 백결( 백 번을 기웠다는 뜻) 선생이라 불렀다. 쓰러져 가는 집에 살며 밥 먹는 날보다 배고픈 날이 많아도 백결 선생은 거문고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거문고 장인 백결선생의 음악인생을 알아보자

거문고 장인 백결선생 출생을 알아보자

414년에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눌지왕 때 아버지 박제상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순절하자 가운데 누나인 아영만이 남아서 거문고 장인 백결선생을 양육하였다고 한다.

거문고 장인 백결선생 방아악 알아보자

새해를 맞아 이웃에서는 조를 찧어 음식을 마련하는데, 거문고 장인 백결선생의 집안은 그것마저 없어서 그의 아내가 이 같은 가난을 상심하자 거문고로 방아 찧는 소리를 연주하여 그의 아내를 위로해 주었다. 백결 선생이 연주하는 거문고 가락이 어찌나 아름답고 신이 나던지 모두 따라 불렀다. 사람들은 이것을 떡방아를 찧는 노래라 하여 방아타령 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때의 음악이 후세에 대악, 방아악 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

거문고 장인 백결선생 낙천악 알아보자

누나 아영을 따라 궁에 입궐하였고 장성해서는 간이 수현의 딸과 혼인하여 관직에도 있었다. 478년 자비왕 때에 모든 관직을떠나 향리로 돌아갔는데, 이때 거문고 장인 백결선생은 낙천악 이라는 귀향곡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거문고 장인 백결선생 대악 알아보자

섣달 그믐날 이웃집에서 떡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한데 가난 때문에 떡을 장만하지 못하는 아내의 푸념소리를 듣고서, 아내를 위로하기 위하여 금이라는 현악기로 떡방아소리를 연주하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현재 전래되지 않고 이름만이 알려졌기 때문에 어떠한 악곡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떡방아 소리를 모방한 악곡이므로 현행 「방아타령」의 기원과 관계가 있으리라고 추측되기도 하고, 조선 초기 및 고려의 노래를 담은『시용향악보』에 전하는 「상저가」와 관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지만, 추측의 근거가 모두 희박하다. 그리고 백결선생이 사용한 금 이라는 현악기가 흔히 거문고 또는 가야금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해석의 근거도 역사적으로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거문고나 가야금의 모체가 되는 신라의 고대 현악기의 일종일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데, 이는 앞으로 고고학 자료 및 문헌자료에 의하여 더욱 검토되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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