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공부

신라 장군 한국 위인 이사부 개척정신 알아보자

불고 또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바닐라 삼촌 2022. 9. 23.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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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실의 중신 위인 이사부를 알아보자

위인 이사부는 일명 태종 내물왕의 4대손으로, 대표적인 장군이며, 신라 왕실의 중신이다. 이사부는 우산국 곧 지금의 울릉도를 신라 땅으로 만든 장수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의 공적을 말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막 커가던 신라의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위인 이사부는 지혜로웠으며, 그 지혜로 권력의 중심에 다가가는 방법을 알아보자.

신라를 키운 리베로 위인 이사부

위인 이사부는 지증왕과 진흥왕을 거치는 동안 한참 커가는 신라의 정복 전쟁에서 선봉장이었다. 신라가 지증왕에 이르러서야 나라의 격을 갖춰 나가는데, 이사부 같은 이가 있어서 그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사부는 신라를 키운 리베로였다. 그의 발끝에서 시작한 정복 전쟁의 공이 굴러, 마지막으로 김춘추라는 스트라이커에게 골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머리를 써서 이기는 전쟁한 위인 이사부

이사부는 힘만 지닌 장수가 아니었다. 그의 전쟁은 대체로 꾀를 써서 이긴 싸움이었다.지증왕 13년(512)이었다. 위인 이사부는 아슬라 주(강릉)의 군주가 되어 우산국(울릉도)을 병합하려고 계획하였다. 그곳 사람들이 미련하고 사나워서, 힘으로 항복받기 어려우나, 꾀를 써서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나무로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함에 나누어 싣고 해안으로 다가가 너희들이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들을 풀어놓아서 밟아 죽이겠다고 알렸다. 우산국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즉시 항복하였다.

장군에서 왕이 된 위인 이사부

법흥왕의 딸 지소는 처음 입종에게 시집을 가서 나중의 진흥왕을 낳았다. 법흥왕의 유명으로 영실을 계부로 맞이하여 황화 공주를 낳았다. 아마도 입종이 먼저 세상을 뜬 것 같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영실과 헤어지고 이사부와 결혼한다. 이사부와의 사이에서는 세종을 낳았다. 이에 태종을 불렀다.

신라 왕실 중심 위인 이사부

삼국사기에서, 이사부를 배하여 병부령으로 삼아 중앙과 지방의 군대 일을 맡도록 하였다(신라본기, 진흥왕 2년)는 대목은 그 하나의 증거이다. 지증왕 대까지만 해도 이사부는 외직으로만 돌고 있었다. 그나마 공적이 있어 역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지만, 법흥왕이 다스리는 26년간은 공적도 지위도 시원치 않았다. 그러다 법흥왕의 딸 지소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이사부는 핵심 중앙 관료로 진출하였다. 우연의 일치는 아니리라. 병부령이 된 일 뒤에는 모종의 역학관계가 작용했음에 틀림없다. 이런 이사부의 권한은 적어도 진흥왕 6년까지도 계속되었다. 위인 이사부가 왕에게 이야기하면 왕은 바로 거칠부에게 명하여 일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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