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공부

한국 위인 고조선 첫 임금 단군 신화 알아보기

불고 또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바닐라 삼촌 2022. 9. 1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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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첫 임금 단군 알아보자.

고조선 첫 임금 단군은 단군왕검이나 단웅천왕 이라고 불린다. 천제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로 서기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위서와 우리나라의 고기를 인용한 삼국유사를 참고한다. 후에 고려시대의 기록으로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있고, 조선 초기의 기록인 권람의 응제시주와 세종실록 지리지 등으로 알 수 있다. 고조선 첫 임금 단군 생애 및 다양한 견해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고조선 첫 임금 단군의 생애 및 활동사항을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단군의 탄생과 고조선 건국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할 때에는 삼국유사의 내용을 우선으로 한다. 삼국유사의 내용은 환인의 서자 환웅이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은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이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곰은 마늘을 먹고 여자의 몸이 되었고 환웅과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가 바로 고조선 첫 임금인 단군왕검이다.

고조선 첫 임금 단군신화의 다양한 견해를 알아보자.

삼국유사의 내용을 근간으로 여러 견해가 제시되었다. 첫째, 고조선 첫 임금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한 종족 신화인데 대몽항쟁 등 민족의 단합이 요구되는 시대에 민족의 시조로 받들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둘째, 단군과 관련하여 불함문화론이라는 견해도 전개되었다. 중앙아시아로부터 한반도, 일본 등을 포함하는 지역에 신앙과 사회조직을 가지는 민족이 분포하는데 종족적 관계는 차지하더라고 문화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견해가 있다.

 

셋째, 고조선 첫 임금 단군신화에 관한 문헌 위주의 해서기 아닌 역사적 입장에서 결론을 내린 견해도 있다. 신화를 다르게 하는 두 종족이 정치 사회적으로 통합되면서 두 종족의 시조 신화가 혼재된 것이며 고조선의 일부족적 시조 설화였던 것이 삼국통일과 고려시대에 민족의식이 고조되면서 한민족의 시조 신화로 변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넷째, 단군신화를 단순한 신화나 토테미즘을 벗어나 우리 민족 태고의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견해들을 감안하면 고조선 첫 임금 단군신화에 대한 이해는 문헌과 고고학적 방법을 연결시켜 분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조선 첫 임금 단군의 민족사적 의의를 배워보자.

단군 인식의 변화를 시기에 따라 네 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는 고조선 당시의 단군인식으로 고조선의 시조신으로 단군이다. 2단계는 고조선 멸망 이후부터 고려 중엽(13세기)까지로 단군을 한반도 서북지역에서 지역 신으로 인식되던 시기라고 한다. 3단계는 고려 중엽에서 한 말까지이며 이 시기에는 단군이 한국의 국조 즉 나라를 처음 있게 한 시조로 숭배되던 시기이다. 4단계는 한말부터 현재까지로 단군이 민조의 시조로 인식되는 시기라고 본다.

 

고조선 첫 임금 단군의 민족사적 의의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고조선 첫 임금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이 단합하는 구심체 구실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위미와 가치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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