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공부

한국 위인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 업적 배워보자.

불고 또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바닐라 삼촌 2022. 10. 13.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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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 업적 알아보자.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 신라 흥덕왕 때 무예에 자질이 있어 당나라로 유학하다가 당나라 해적들이 신라인을 노략하고 노비로 파는 것을 보고 완도에 청해진을 건설하고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했다. 당과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로를 통해 무역활동을 주도했다.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 업적 배워보자.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 청해진 설치하다.

당나라에서 해상무역에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던 통일신라 해상황 장보고는 귀국 후 제일 먼저 청해진을 설치했다. 청해진을 설치한 이유는 신라인들이 해적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노비로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신라인들의 안전한 해상무역을 위한 군사기지였다. 청해진이 건설된 뒤 그는 해적을 소탕하여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했고,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로를 통한 무역활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해적들에게 공포의 존재가 되었고 국민들에게는 영웅이 되었다.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 무역 기초를 만들다

신라는 통일 후 일본과 발해, 아라비아 상인들과 활발한 무역 활동을 했다. 신라는 금, 은, 인삼, 약재 등을 주로 팔았고, 당나라에서는 비단, 옷, 책, 공예품 등을 수입하였다. 아라비아 상인들은 울산항을 통해 들어와 보석, 향료, 모직물, 유리 그릇 등을 팔았다. 울산항은 당시 국제 무역항으로서 크게 번성하여 일본과 중국, 아라비아, 동남아시아를 이어주는 중계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산둥 반도와 화이허 강 일대에는 신라인의 마을인 신라방과 신라촌이 생기고 신라원이라는 절까지 있을 만큼 활발한 무역 활동을 펼쳤다. 서양 문물과의 교역도 활발히 이루어진 것은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의 역할이 컸다.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 사라진 해상강국 꿈

통일 신라 해상왕 장보고의 출신 성분과 너무 커져 버린 세력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장보고의 딸을 문성왕의 두 번째 왕비로 들여보내는 문제였다. 왕이 이 문제를 의논하자 조정의 신하들이 반대로 무산되었다.염장에 의해 죽음을 당하면서 청해진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신라의 해상 무역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튼튼한 재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의 무역선단은 당나라와 일본을 넘나들며 해상 무역의 신기원을 열었다. 그렇게 장보고는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했던 해상 왕국을 건설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해상강국이 다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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