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승려 원효대사 불교 전파 3가지 사상 알아보자
신라 승려 원효대사 왕실과 귀족 등에게만 받아들여진 불교를 일반 백성들에게 전파하고자 노력했다. 제자를 양성하는 데에는 큰 뜻을 두지 않았으며, 신라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중국에 널리 알려져 중국 화엄학이 성립되는 데에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특히 고려 시대에 들어와 의천에 의해 화쟁 국사로 추증되면서부터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불교 사상을 종합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한 정토교의 선구자이자 으뜸가는 저술가인 신라 승려 원효대사의 3가지 사상을 알아보자.
신라 승려 원효대사 일심 사상 알아보자
신라 승려 원효의 일심 사상을 알아보자. 일심은 모든 중생의 마음을 가리킨다.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뜻의 진여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은 항상 망념과 번뇌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무지 때문에 미망의 현상적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깨달으면 곧 마음은 그 원천으로 돌아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다고 생각한다.
신라 승려 원효대사 화쟁사상 알아보자
신라 승려 원효대사는 어느 한 종파에 치우치지 않고 화엄경, 반야경, 열반경, 해심밀경, 아미타경 등 대승불교 경전 전체를 섭렵하고 통효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전체 불교를 하나의 진리에 귀납하고 종합 정리하여 자기 분열이 없는 보다 높은 입장에서 불교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이러한 그의 조화 사상을 화쟁사상이라고 한다.
십문화쟁론은 바로 이러한 화쟁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의 핵심적인 저술이다. 그는 여러 이설을 십문으로 모아 정리하고 회통함으로써 일승 불교의 건설을 위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신라 승려 원효대사의 이와 같은 통불교적 귀일 사상은 한국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철저한 논리의 근거를 가지고 화쟁을 주장하였다.
신라 승려 원효대사 무애사상 알아보자
신라 승려 원효대사의 무애사상은 그의 사생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한 자유인이었다.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난다라고 한 그의 말을 보더라도 그의 무애 사상은 짐작된다. 그는 부처와 중생을 둘로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릇 중생의 마음은 원융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니, 태연하기가 허공과 같고 잠잠하기가 오히려 바다와 같으므로 평등하여 차별상이 없다고 하였다.
신라 승려 원효대사는 철저한 자유가 중생심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고, 스스로도 철저한 자유인이 될 수 있었으며, 그 어느 종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일승과 일심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밖에도 원효는 여래장사상 등 불교의 모든 사상에 대하여서도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확립하였다.
'한국의 역사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해 건국 시조 대조영 업적 알아보자 (0) | 2022.10.25 |
---|---|
한국 위인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 업적 배워보자. (0) | 2022.10.13 |
신라시대 한국 위인 문무왕 업적 알아보자 (0) | 2022.10.04 |
한국 위인 신라 장군 김유신 업적 찾아보자 (0) | 2022.09.30 |
한국 위인 계백 장군 황산벌 전투 배워보자 (0) | 2022.09.30 |